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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먹고 버린 김치 볶음밥
작성일 : 2004.05.28 00:00 조회 : 1286
젊었을 때 한 동안 자취를 했었다
워낙 빠듯한 돈으로 생활을 해야했기에 이거저거 아끼다 보니
자연 먹는 것도 시원치 못햇다
항상 배가 고팠고 어떤 날은 봄도 아닌데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 광경을 보기도 했다
자취방으로 가기 위해 산등성이를 오르려면
필연적으로 시장 한가운데를 지나가야 했는데
도중에 있는 순대국밥집에서 흘러 나오던 냄새는 주린 배를 더 뒤틀리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돈이 생기게 되었다
당연히 그 돈으로 제일 먼저 한 것은
순대국밥 한그릇을 게눈 감추듯이 해치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게에 들러 버터를 큰 것으로 하나 샀다
맨날 만나는 밥상의 그린 필드가
기름지게 변하겠다는 생각으로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언덕길이 길다고 여겼었는데 사실은 짧다는 것을 그날 알았다
바닥이 멀지 않은 쌀통을 긁어 해 놓아던 식은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
한 동안 고민을 한 결과 김치 볶음밥을 하기로 했다
워낙 요리 솜씨도 없었거니와
다른 요리를 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의 조달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버터의 양이었다
지방 1g당 9 cal가 나온다는 것은 학교 다닐 때 배운 바 있고
물론 다른 어떤 것 보다 많은 칼로리가 나온다는 사실이 매력 있어
망설이지 않고 버터를 고른 것이었지만......
아무튼 행복에 겨운 얼굴로 요리사 버금가는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아 가면서
달구어진 후라이 팬에 버터를 넣고 김치를 넣은 후 달달 볶다가
밥 두 공기를 넣고 비비고 누르고 돌리고 휘젓고 흔들다가
문득 스치는 생각
"가만 건장한 성인 남자에게 필요한 하루 기초대사량이 1500cal니까,
오늘 저녁과 내일까지 견디기 위한 에너지가 아까 먹은 순대국밥 빼면 얼마나 돼지?"
순식간에 내린 결론은 버터의 한덩이의 반 정도를 먹어야 한다는 것.
또 다시 흐믓한 미소...
배부른 자의 미소가 이런 것일껄 하는 생각도 함께...
딴 생각 할 겨를도 없이 버터는 뭉텅 잘려 후라이팬 속으로 다이빙을 했고
자글자글 끓는 기름 속에서 밥알들은 뜨겁다고 아우성을 쳤다
그래도 나는 좋은 걸 어쩌랴!

하지만 나는 그 맛있는(?) 영양가 만점인(?) 밥을 딱 한숟가락 밖에 먹지 못했다
가난이 눈물겨워서도 아니고
좀 전에 먹은 순대국밥이 뱃속에서 불어 더 집어 넣을 공간이 없어서도 아니고
아껴 두었다가 나중에 먹으려는 것도 아닌

그 기름진 음식은 도저히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시어 터진 김치와 거무튀튀한 찬반에 너무 많은 버터를 들어 부었던 것이다.
그 맛을 표현하려 하는 이 순간에도 욕지기가 올라 오려고 한다
홋기라도 그 맛이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당장 한번 위에 적은 비법대로 만들어 드셔 보시라

하여간 나는 하루 필요한 칼로리만 생각하고
음식의 조화와 궁합은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악의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 했던 것이다.
당연히 나는 그 음식들을 버려야 했다
그래도 먹어야 한다는 사명감(?)과 멍청한 짓을 했다는 속쓰림 속에서 잠깐 망설이는 사이 김치버터탕(?)은 엉키고 설켜 쳐다보기에도 끔찍한 몰골까지 형성했으니 더 이상 미련을 둘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완존히 새 됐다

하지만 그 경험으로 나는 그 어떤 것 보다 값진 교훈을 얻었다

여러분은 여기서 어떤 교훈을 얻으실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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